[전체적인 감상]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알을 깨주는 것 보다 스스로 깨고 나올때까지 기다려주는 모습을 통해서 배려를 깨달았다.
I know that the consideration is not to break the agg but to wait for going out after breaking the agg oneself, when I have read the book.
[한줄요약]
배려는 기다려 주는 것이다.
The consideration means the waiting.
[한단어 요약]
기다림
Wa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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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책의 두번째 챕터를 보면서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 와 연장선상의 시각에서 글을 보기 시작했다.
When I read the 4th chapter I have realized that it is same the Digilog's view.
어찌보면 벤처기업의 아이디어 상품처럼 이어령 교수의 상반된 것의 연합으로 인해 제삼의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 주는 방식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낯설지 않음을 봤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제임스의 문제 해결관점이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It looks like product of venture company. A new one is from directly-opposed ideas is mixed. It's so miracle but not strange. I think that it's so similar to James' view.
최근들어 책을 읽다 보니 계속 책을 통해 제임스를 분석하고 규정하려 하는 습성이 생긴것은 사실이지만 뭐 대표자의 지향하는 것을 빨리 인지할수 있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인것 같다.
Recently, whenever I read the book for 읽었day I am used to analyze and define James. It's not so bad what I realize CEO's view but so positive to me.
상대방을 무릎 꿇게 하는 방법이 어떤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제하여 무릎을 꿇게 할수도 있고 또는 무릎을 할수 없이 꿇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무릎을 꿇게 하는 방법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한마디로 전자의 경우는 동기가 없다. 그래서 지속력이 없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필요성의 인식으로 인해 지속성을 가지게 된다.
I have one questtion. How much do you know how to make one give in?
The first is to be given up by force. And the second is method that it is not able to help surrenderring by situation. The first is good for one time, but it's not expected continue. It has no any motivation to go on. The second is not easy, but it's so effective that has motivation to keep going.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주기 위해서 나의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그것에 수긍하는 상대가 말려들게 해서 상대도 스스로를 인정하게 할 경우 결과적으로는 상대가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물론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먼저 고백을 했기에 자존감에도 상처가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윈윈의 사고를 가지는 것이다.
James confesses his fault before indicate someone's fault. Of course, his confess involved something not to deny someone's fault. The someone has no any complain about the indication because of his indication. And James is not also. That is called "WinWin".
이어령 교수의 시각을 보면 대비된다 해서 언제나 마주보게 하는것 보다는 같은 방향으로 대비성을 이야기 해본다. 또다른 뭔가를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제임스가 상대를 무릎꿇게 하는것 처럼....
Dr. Lee doesn't put on directly-opposed things like that. And he puts on the things with another method. And the things is mixed as James did.
이런 부분들을 통해서 제임스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법이 되었던 책 같다. 176페이지 전까지는....
It's so influenced to me that I realize new one about James before page 176.
I have seen a picture of seminar held the KMA today morning.
The announcer is owner bachelor's fruit sailer. The seminar give me a lot of useful knowledge of attitude at my life.
He insists on follow serveral things.
The first is that do enjoy your choice to select yourself. I ask some questions followed myself. Do I have the job to choose myself? Do I enjoy my job? Do I gain energy when I do my work? It's perfact to me if I gain the energy for doing my work without refresh.
The sencond is that the brave man, to have passion, will gain the beautiful woman. If the man to have passion thinks something he must do that, then he doesn't regret.
The third is that you will be host someday, if you do work for company as host when you are not host. It means same before I announced the word, 'Announce owner yourself!'
As a result, it seems that the owner is powerful, dynamic, and alive.
이 책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에 관해서 이야기 한 책이다. 예전에 Nuts 라는 책을 통해서 사우스웨스트를 접한 경험이 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느끼면 부분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가 이론적인 이상에 기반을 두고 최대한 근접한 상태를 이야기 하듯, 현실상에서 군더더기를 빼면 가장 이상적인 조직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The book is talking about the Southwest company. A few years ago, I had ever seen the company at the Nuts. It's perfact system culture, if several real problem is removed as democracy or socialism is perfact ideas in theory.
지면을 통해서 본 사우스웨스트는 부럽다. 책에 나오는 내용만 보면 부럽고 일사천리로 모든것들이 다 되어지는 모습이 나로 하여금 가슴을 뜨겁게 하기도 하고 의욕과 한숨을 동시에 주는 그런 이야기 인것 같다.
At the book, I envy the company, Southwes. It is so excited and depressed me what is only context of the book which everything is dealt with a rush.
평시에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딱히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하더라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물론 나도 이런 방식으로 추구하고 지향하기는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인지도, 아니면 구성원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지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두가 일사 분란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마음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Despite we are also solving the problem at the risk without any manual for risk management and we are doing role at each posion at the stable. Finally I want to go for the dealing but it's not easy at reality. I'm not sure that it is need more errors and intimate relationship with colleague but I'm sure one that the perfact action is need opened mind of members.
[ 나는 따라갈 때 더 힘이 드는가? 아니면 이끌고 갈 때 더 힘이 드는가? ]
[ Do I feel hard when I follow other or I lead others? ]
사우스웨스트는 아주 이상적인 조직이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이런 문화를 갖기 위해서사우스웨스트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 조직문화에 적응 못해서 떠나야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는 이 조직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이 책의 저자와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의견의 충돌이 일었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The Southwest is ideal system. And I think about how much errors to gain the culture for the company. Someone have to escape the system because of maladaptation and standing against the curture. And someone make a secrafice.
무언가를 알아가는 것,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아는 것, 즉 체득(體得)을 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행동하기 전에 깨닫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 움직이는 방법과 최소한의 이론을 기반으로 몸소 부딛치면서 깨닫는 방법이 있다. 아이탱크가 취하고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취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To be knowing something, It means not with knowledge and with action, that is to say, there is two methods to know with action. The one is what has perfact knowledge before action and another is what gathers knowledge through trying to act with least information. What's Itank's method? And What's my method?
결론은 이런 좋은 조직문화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공부도 많이 해야하겠지만 부단한 시행착오의 댓가가 더 필요한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As a result, I think that this good system culture is needed more studying and more errors.
예수님이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라(행 1:8)는 말씀을 기본 토대로 전도의 필요성과 전도시에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거기에 보면 최근 버시바우의 발언과 관련하여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관이 제국주의나 국수주의에 빠져서는 안된다. 미국사람들이 '영국을 보면서 저들은 틀린방향으로 차를 운행하네'라고 한다고 한다.(미국은 좌측 통행이고 영국은 우측통행이다)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가? 맞고 틀림의 기준이 무엇인가? 자신이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것만이 반드시 맞는것인가? 자기 나라의 문화만 우월하고 타국의 문화는 저급한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우월성을 가늠한 것인가? 그러므로 복음을 들고 주님의 증인이 되기로 한 당신이라면 국수주의적 사고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고 복음을 전파하려는 그곳의 문화와 전통을 인정해야 한다.
위의 내용에 입각하여 버시바우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말하는 공부를 잘한다는 기준이 절대적인가? 당신네 나라의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인정해야 공부를 잘하고 많이 한 것인가? 그 기준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버시바우 당신이 알고 있는게 전부라고 생각하는가?
경고하는데 그런 국수주의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버시바우, 당신이 더 공부를 해야한다.
의욕만 앞세운채 머리를 쓰지 않고 포크레인만 쓴 이명박 정부, 일반 기업에서는 인재가 1억을 착복하고 100억을 벌어다 주는 인재라면 큰 문제 없이 눈감아 줄 수 있는 인재로 여기듯이 정부 장관인사를 그 기준에 놓고 인사를 한 이명박 정부, 기업에서는 오너가 곧 법이다. 대통령이 곧 법인줄로 착각하고 사는 군주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이명박 정부... 이런 모습들이 그들을 아마추어 정부로 만들었고 프로국민에게 몰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다.
국회? 이는 견재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국민이 나서니 어쩔수 없이 등떠밀려 나서는 야당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그런생각을 해본다. 저 사람들은 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노? 저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 아닌가? 너무 티 난다. 정말로 거리로 나와서 힘들게 연좌하면서 고생하면서 일 안하고픈데... 그냥 국회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콘 아래서 필요하면 가끔 몸싸움이나 하면서 그렇게 그냥 조용히 있고 픈데... 왜 골치 아프게 국민들은 절케 들고 일어나농? 이거 참 가만 있짜니 눈치 보이고 나가서 함께 투쟁하자니 귀찮고 게다가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까지는 4년이나 남았는데... 지금 나가서 열심히 해봤자 다음 선거때까지는 약발도 안 설텐데... 참 짜증난다. 이런 생각이 이제서야 거리의 맨 뒤에 엉거주춤하게 앉아서 여차하면 바로 도망갈 자세로 있는 국회의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저들이 말하는 소통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철길과 같은 평행성을 달리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반성한다면서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반성인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시대는 이미 흘러갔다.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빨리 고쳐야 한다. 괜히 개기면서 매를 벌 필요는 없는듯하다.
이와 같은 현 시점의 사태를 보면서 나 또한 귀를 막고 경청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원하는 부분만 구멍을 뚫어 놓고 주위의 조언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 아주 심각하게 점검해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주인공의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과 너무도 같음에 너무 싫고 나의 치부를 다 들어내 놓은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일을 잘하고 능력 있다." 이런 표현에는 어느 정도의 독선이 용인되고 그러므로 인해 추진력이 발휘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적인 추진력은 어찌 보면 강압에 의한 밀어붙이는 방식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적인 추진력이다. 충격에 의한 밀려나가는 것이다. 그 충격이 만성화되면 조직원들은 그 리더에게서 멀어진다. 그리고 벽이 생기기 시작한다. 힘들게 조직이 유지되기는 하지만 시너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의 성과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상태에서는 강압적인 리더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가진 조직이라고 한다면 강압적인 리더의 충격요법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가 가장 이상적일까? 안정된 조직에서 이상적인 리더 상은 어떤 것일까?
최근 들어 "경청", "프레임" 그리고 이번의 "겸손" 등의 책을 통해서 나에게 인식되는 생각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라."이다. 내가 만능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작은 조직에서는 만능이 될 수 있겠지만..., 조직이 커가는데 어찌 만능이 될 수 있겠는가? 제갈량이 만능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단명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나 스스로 자신에게 너의 한계를 인정하고 너의 한계를 극복할만한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거 같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은 만물의 영장 아닌가? 도구를 이용하면 될듯하다. 나를 둘러싼 나의 모든 환경을 한번 보자. 내 가족과 직장과 교회와 그리고 친구들...., 저마다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잠깐 샛길로 빠져서 컴퓨터에서 말하는 클러스터(cluster)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사전적 의미는 무리, 떼, 집단, 결합 등의 의미가 있고 컴퓨터 공학에서는 "여러 개의 시스템이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로 정의 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의 지혜를 클러스터 하면 훨씬 나 혼자 뭔가를 생각하고 추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기본 원칙은 세워졌다. 내 머리를 제외하고 내 주위의 각 분야의 인재들의 지혜를 모아 놓고 나는 선택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다익선인데..., 무엇보다 가장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내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쉽게 다녀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친화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친화력을 가지고 난 후에는 운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선택하는 능력과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우선적으로 내가 변해야 하는 과제는 친화력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게 해야 한다. "경청"이 떠오르는군. 일단 내 속을 다 보여주고 진심으로 상대에게 다가가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찌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하지만, 시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나 스스로 자신이 겸손한 마음으로 타인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소크라테스의 절대진리와 소피스트의 상대진리에 대해 비교하면서 배웠다. 물론 결론은 선생님과 교과서가 내준대로만 배웠다. 절대주의는 좋은 것이고 상대주의는 안 좋은것이다. 이유는 쉽게 설명도 안되겠지만 일단 내가 배운바에 의하면 결론을 내고 그 결론에 맞게 포장을 하는 식으로 배우지 않았나 싶다.
상대주의 진리는 왜 틀린것인가? 너무 비약일지는 모르지만 프레임에서 제시하는 것은 상대주의적 진리를 통해서 내가 바라보고 평가하는 것이 참과 거짓의 경계를 뒤집을 수 있는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봤다. 시험에서 40점 미만이면 낙제다. 이것이 참인가? 만약에 기준점수가 30점일때 39점 받은 사람은 낙제가 아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다면 지극히 상대적으로 참과 거짓이 바뀔수 있다는 것이다.
이책을 통해서 다시 돌이켜 보게 된 것은 내가 보고, 가지고, 누리고 있는 모든것들이 본질 즉 참이 아닐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기준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행복해 질수도 있고 불행해 질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무 이유 없다.' 그냥 화가 날때가 있다.
대략적인 상황을 정리해보면...
1. 상대로 무시를 당했을때...
2. 상황 제어가 되지 않을때...
3. 여러사람으로 부터 한꺼번에 매도 당할때...
4. 알려지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알려 졌을때...
5. 나의 요청이 무시 되어졌을때...
6. 내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될때...
7. 사건의 크고 작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작은 사건을 당했을때...
바로 생각나는 것들에 대해서만 적어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화를 내는 기저에는 내가 내 스스로는 존귀히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절제력이 약하고 다른 이보다 본인이 스스로 우월하다는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더 잘 낼수 있는거 같다. 물론 이 가설은 나의 상황만을 토대로 한것이기에 객관성은 결여되지만....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나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부분을 조금 상쇠시킬 필요가 있다. 나의 잘난 부분만을 떠 올리지 말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떠올리며 상대도 그럴수 있음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드려야한다는 것, 아울러 상대가 늘 나보다 나을수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사에 더 신중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데.... 나의 무식의 무기로 용감하게 돌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부족함과 그래서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조심스러운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새롭다기 보다는... 신선한 자극이다. 알면서도 간과하거나 게으름을 핑계로 모른체 한것들에 대한 자극. 이런 자극을 통해서 나의 삶을 다시금 바로 되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책이다.
신규 직원 채용을 위한 면접때 이런 질문을 많이 한다. '당신이 잘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책에서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 또한 내가 던진 질문에 머뭇거리던 면접대상자들처럼 뚜렷하게 난 무엇을 잘한다고 말을 못하는듯 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잘하는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게다가 '그럼 무엇을 못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봤는데 이또한 신통치 않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도 무엇을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심도있게 고민을 한다거나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잘하는 방향으로 나를 더욱 발전시키고 못하는 부분을 안다면 못하는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겠지만 그와같은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가 정리한 내용이 없어서 그냥 저냥 내 스스로를 소비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 나무를 베고 있는 두사람이 있었다.
한사람은 여덟 시간을 일해서 한 구루의 나무를 베었다. 다른 한 사람은 여덟 시간을 일해서 두 구루의 나무를 베었다. 여덟 시간을 일해서 두구루의 나무를 벤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일하는 여덟시간둥에서 두시간은 톱날을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나무를 자르는 일을 그만두고 전직을 해서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한 구루의 나무를 베는 사람의 말처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네겐 톱날을 갈만한 시간이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톱질하는데 너무 바쁘기 때문이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게 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엇을 위해서 무엇때문에 바쁜가? 그 바쁨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바쁨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괴 시키는데 바쁜것이 아닌가? 순간적인 고출력 보다는 꾸준하고 일정한 출력을 낼 수 있는것이 더 값어치가 있다. 내일 당장 죽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면 내일을 위한 투자를 열심히 해야한다.
"상상을 하면 이루어진다."
어떤일에 대해서 힘들게 라도 해본 사람은 그일을 접할때 "할 수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할 수 없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게다가 후자의 경우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다. 영원히 할 수 없다.
상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가 결정되어진다. 할 수 있다는 상상에서 시작하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








